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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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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없는 자의 권위(마가복음 12장 1~12절) 건축자의 버린 돌(마가복음 12장 1~12절)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유대 지도자들을 향한 질타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 내용은 창조와 타락을 담고 있는 창세기 1~3장의 내용의 축약이기도 하다.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지 않고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목적으로 이용하는 죄를 지었다.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들을 일깨우려 하였지만 유대의 지도자들은 변하지 않고 더욱 탐욕스럽게 변해 갔다. 결국 이들은 반역을 꿈꾸고 이를 실행한다.ᅠ 이러한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은 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이 비유는 모든 인류를 향하고 있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지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세계를 다스리게 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한 가..
권위의 생리(막11:27-33) 성전을 정화하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에게서 공식적으로 권위를 위임 받았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이 와서 예수님이 하는 행위가 자기들에게 허락 받았는지 물어본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28)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설명하기위해 세례요한의 권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에게 물어본다. 이는 아마도 세례요한의 권위와 예수님의 권위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을 반영한 반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말하느냐하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선지자라고 답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일부는 세례요한이 살아 돌아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세례요한의 권위에 대해서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
기도할수록 망하는 길(마가복음 11장12-21절) 기도하는 거짓 신자(마가복음 11장12-21절) 예루살렘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표현했을 때, 이는 용도와 도구(장소)가 결합되어 있다. 무화과나무도 이와 동일하다. 용도는 열매를 맺는 것이고, 잎과 가지는 열매를 담는 그릇(도구)이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하면 무화과나무라는 도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또한 성전 정화 사건은 이 무화과나무 비유 사이에 끼어 있다. 무화과의 저주와 그 결과 사이에 성전 정화가 마치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고 뿌리째 마른 원인 것처럼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도 원래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무화과나무처럼 될 것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용도는 기도하는 곳이다. 기도가 이곳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성전은 존재 이유가 없다. 그러면 예루살렘에서는 기도가..
나귀 새끼 위의 그리스도(마가복음 11장 1~11절) 나귀 새끼 위의 그리스도(마가복음 11장 1~11절) 나귀 새끼를 소재로 한 설교를 보면 나귀 새끼의 시점을 이용한 풍자적인 설교인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을 보면 나귀를 의인화 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에게 쏟아지는 환호성을 마치 자신을 향한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나귀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주의 하자는 것이다. 설득력 있고 좋은 교훈이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나귀를 이용하신 이유가 이런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것일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 본문에서 나귀 새끼는 보조적 장치가 아니라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장치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님은 일부러 나귀 새끼를 준비하셔서 이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예수살렘을 여러 번 방문하셨다. 일반 성인이 예..
바디매오의 꿈(막10:46-52) 바디매오의 꿈(막10:46-52) 바디매오는 어떤 사람일까? 성경학자들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치료하신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두 명만 그 신분이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이 중에 첫째는 마가복음 5장 22절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고, 다음이 바디매오이다. 그렇지만 바디메오는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바디매오란 아들이란 뜻의 ‘바’와 ‘디매오’의 함성어로서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에 의탁하여 사람들에게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거지였다. 아니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서 버려져서 아버지의 이름 디매오만 알고 있는 불쌍한 한 인간이었을 지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이같은 처지는 그로하여금 꿈을 가지기는 호사를 허용하지 않..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의 비밀 (마가복음 9장 14~29절)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의 비밀(마가복음 9장 14~29절)2019년 3월 21일 이춘성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오신다. 이때에 나머지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군중들은 이 모습을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다. 이 논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사람들의 시선은 예수님을 향한다. 이제 논쟁의 주체는 제자들에게서 선생님인 예수님에게로 옮겨 간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선생님은 단숨에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러한 선생과 제자들의 이야기의 구조는 전 세계 모든 경전과 교육과 관련된 역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흔한 관경이다. 이 사건도 상투적인 이야기일까? 이 사건은 우리가 아는 선생과 제자 사이의 일반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다. 이..
기적이 일상이 될 수 있을까?(마가복음 8장 14~21절) 기적이 일상이 될 수 있을까?(마가복음 8장 14~21절)2019년 3월 18일 월요일 아침, 이춘성 매일 가족과 아침 식사 후에 함께 읽는 말씀 묵상 잡지는 짧지만 가족의 영적인 식사를 책임지는 귀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종종 말씀해설을 쓰시는 목사님들이나 교수님들도 실수하실 때가 있다. 오늘 말씀은 좀 난해한 본문이라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말씀은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시고 12바구니와 7바구니 가득 빵을 남기신 사건,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배를 타고 벳새다로 건너가고 있는 중이었다. 말씀의 시작인 14절에서 성경 저자는 배에는 빵이 없다고 밝힌다. 제자들이 빵 바구니를 두고 왔다는 것이다. 16절에는 제자들이 그들의 입으로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