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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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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도시와 나그네 어거스틴은 왕국(Kingdom)을 사용하지 않고 도시(City)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을 지필한다. 어거스틴은 이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사는 세상은 유일한 통치자 예수님에 의해서 통치되는 신정 왕국이 아니라 여러 정치 세력이 싸우는 도시국가라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깨닫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마도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 상 첫번째 크스첸돔(기독교 왕국)인 로마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살아갈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사는 세상은 다원화된 도시이며, 그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또 하나의 세력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왕국은 한 인격체인 왕에 의존한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왕이신 왕국을 추구한다...
환대는 말이 아닌 돈으로(코모디아누스의 충고) 코모디아누스의 충고: 환대는 말이 아닌 돈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후 240년경에 북아프리카의 주교였던 코모디아누스(Commodianus)가 쓴 글의 한 부분입니다.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것에는 말로 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글입니다. 코모디아누스는 실천을 강조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습니다. 오늘 환대에 대한 초대 교회의 글들을 읽으면서 누굴 돕는 다는 것은 결코 입으로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합니다”라는 거룩하고 무거운 말이 오늘 날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선의 실천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양심의 짐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위선자의 말이 “기도합니다”는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제..
급진적 환대(제롬) 급진적 환대 카라비지오의 성 히에로니무스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선을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고 쫓았는지 보여주는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우리가 잘하는 제롬(히에로니무스)이라는 신학자는 라틴어 번역 성경인 불가타를 번역한 초대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가 번역한 성경은 지금도 로마 카톨릭의 정경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이러한 지적인 인물의 이면에는 신앙과 실천의 열정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환대에 대한 이해는 현대의 환대의 철학자인 레비나스의 주장을 뛰어 넘습니다. 레비나스는 강도라 할지라도 강도의 타자의 얼굴은 환대를 거부할 수 없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언어는 타자의 얼굴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많..
바리새인은 누구인가? 바리새인은 누구인가?누가-사도행전을 제외하고 바리새인에 대한 표현은 과격하리만큼 혹독하게 부정적이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라고 비판하기도하신다. 그런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바리새인에 대한 그러한 고정적인 시각과는 다른 관점을 제공해 준다. 먼저 누가복음은 대체적으로 바리새인에대해서 부정적이지만 예수님의 직접적인 비판이 나오지 않는다. 정황상 부정적인 상황이 연속해서 나오고, 계속하여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을 향한 적대적 태도에 대한 아쉬움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형의 모습이다. 형은 아버지로 부터 계속해서 잔치에 초대 받지만 그는 거부한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행전에 가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사도행전에서 바리새인을 대표하는 가말리엘이 베드로와 요한을 두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