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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마가복음

환영하며 맞이하는 삶(마가복음 13장 28~37절)

환영하며 맞이하는 삶(마가복음 13장 28~37절)

 

 

어느 날 겨울 동안 메마른 나무 가지 사이로 새순이 돋아 나는 것을 창 밖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이제 봄이 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은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다. 꼭 자연의 변화를 봐야만 계절의 변화를 깨닫는다.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는 것을 봐야만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말이다(28). 이렇듯 주변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우리 앞에 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군지 모르지만 귀한 손님이 문 밖에 와서 수줍은 인기척을 할 때, 무감각한 주인은 손님을 지나치지만 예민한 주인은 손님을 알아보고 문을 활짝 열어 맞이 한다.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맞이한 것을 히브리서 저자가 믿음의 행동으로 칭찬한 것처럼(히 13:2), 우리도 민감하게 주변을 살피면서 우리 앞에 와 계신 귀한 손님인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행위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맞이할 준비를 어떤 특정한 시점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 세대(γενεά)가 지나가기 전”이란 동시대에 태어나서 함께 살고 있는 기간 동안이란 뜻이다. 이 말은 살아 있는 동안 언제든 예수님이 문 앞에 와 계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하여 ‘문(θύραις)’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문들’이다. 이것도 한 사람의 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문을 의미한다. 사람 각각의 문 앞에 사람 각각의 인생의 기간 중에 예수님은 이들의 인생의 문 앞에 오실 것이다. 이것은 명확하고 분명한 사실이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1)

 

각각의 인생 앞에 찾아 오시는 그 시점은 정해진 한 시점이 아니다. 각 사람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찾아오신다.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이 말씀을 예수님의 재림의 한 시점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씀은 개개인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방문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 다 다른 개인의 인생을 고려하셔서 정하신 어떤 시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정해진 규칙이나 공적인 시간이 아니라 각각 다 다른 불 규칙적인 사적인 시간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이다. 더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은 나의 시간이 다른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언제 그렇게 되었다고 하여도 나도 같은 시간이나 그다음 차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면 바로 그다음이 나일 수도 있고...

 

각각의 인생에 문지기를 세우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각각의 소명을 충실히 행하자. 문지기의 존재는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적인 경계심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문지기가 없는 인생은 나태해지고 소명은 뒤로 미뤄진다. 둘째로 문지기는 예수님이 오심을 알려주는 영적 민감성을 줄 것이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 앞에 계시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이 앞에 있는 것처럼 살기를 원하신다. 언제나 예수님을 환영하고 맞이하는 설레임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