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읽다> “로완 윌리엄스” : 2020년 3월 15일, 이춘성
성공회의 수장인 켄터베리 주교를 지낸 로완 윌리엄스가 쓴 바울 서신에대한 간략한 개론서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바클레이가 쓴 바울 입문서와 비교될 정도로 적은 분량이지만 이 두 책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바클레이의 책이 아카데믹하다면, 윌리엄스의 책은 대중적이라 할 수 있으며, 바울 서신의 직접 인용이 매우 많이 있다는 점이다. 매우 긴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일들이 빈번하여 때로는 성경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한글 번역은 역자가 서두에 밝힌 것처럼 공동번역개정판을 주로 사용하였고, 저자의 번역과 차이가 많을 경우 영어를 그대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책에 나오는 성경 인용은 자신이 그리스어 원문에서 번역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영어 번역보다는 원문을 읽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해석과 관점을 의도적으로드러내기위해 본인의 번역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번역자가 기존의 번역 성경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의미에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하여도 저자가 의도한 이 책의 묘미를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아쉬움이 바로 인용된 성경을 읽으면서 윌리엄스만의 독특한 해석과 관점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이 점이 매우 중요하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저자는 제1장에서 바울의 출생(로마 시민), 외모, 과거 기독교인을 박해했던 일, 당시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화적, 종교적인 배경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울과 바울 주변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딱딱한 사회 수사학적 연구서적의 틀을 벗어나서 옆집 아저씨가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재미있게 서술하는 것이 윌리엄스의 매력이다.
2장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밝힌다. 윌리엄스는 바울의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환영, 환대라고 말한다. 인종과 성별, 사회의 지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구별하는 막힌 벽들을 치우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는 유일 종교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종교는 여러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한 것들이었다. 오히려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는 종교에 앞서는 개념이었다. 지금 우리의 시대와 유사하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일신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유대교는 로마에서 유일하게 인정받는 배타적인 종교였다. 그 이유는 유대교는 단순히 당시의 종교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대인을 규정하는 민족 종교이며, 유대 민족과 유대교는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유대교인이라는 것은 유대인이라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달리 기독교는 로마의 십자가 형을 당하고 죽은 악한 죄인인 예수를 유일한 신으로 믿었다. 이는 예수를 무죄한 자로 간주한다는 측면에서 로마의 법과 사법권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또한 다양한 계층과 민족이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은 이들이 유대인과 같이 새로운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겠다는 의지이며, 이전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겠다는 반역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바울이 전한 누구에게나 열린 환대의 복음은 기존의 체계에서는 반역처럼 보일 충분한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한 이러한 급진적인 복음은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급진적 행동과는 달랐다. 바울은 직접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가부장제를 무가치하다고 비판하지 않았으며,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들이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했으며, 아내는 남편의 소유라고 했으며, 국가에 복종하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로 주인은 종을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자녀로 여겨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해야 하며, 국가는 시민의 안녕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양면성을 통해 사회의 제도 이전에 각각의 올바른 태도에 변화를 촉구했고, 이후에 태도를 변화시킨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는 조금씩 개혁되었다. 윌리엄스는 노예제도의 개혁이 약 1800년이 지난 후 윌리엄 윌버포스를 통해 제도적인 개혁이 일어났으며, 이후 약 1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제도는 차츰 전 세계의 개혁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혁명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혁명의 씨를 뿌린 결정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의 가르침과 그의 신중함은 우리 시대의 변화를 꿈꾸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이렇듯 윌리엄스는 그의 책에서 바울 서신의 복음을 단순한 청의와 성화 등의 구원론 적인 교리적 서신으로만 보지 않고, 이 복음이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변화의 불씨를 만드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제3장에서 종말을 다루면서 종말이 단지 미래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서술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말은 이미 시작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환대하는 삶은 종말을 기대하고 종말을 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이러한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공동체, 민족, 국가의 모임이며,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인 실현이다. 번역에 일부 아쉬움이 있지만 바울 서신을 다른 관점에서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또 다른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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