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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마가복음

나는 지금 부활을 산다.(마가복음 12:18–27)

나는 지금 부활을 산다.(마가복음 12:18–27)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예수님을 골탕 먹이려는 악한 의도로 질문 하였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신학적인 질문으로 예수님보다 자기들이 탁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사두개인들은 당시 사회의 주류를 형성한 지배층에 속해 이었다. 이들은 주로 제사장 가문으로 속한 자들로서 산헤드린 공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특징은 구전보다는 기록된 문서만을 성경으로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율법이 기록된 모세 오경을 제외한 구전을 통해 기록된 선지서나 최근 문서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오경에는 부활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은 스홀에서 영원히 휴식한다고 생각하였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언급하는 선지서나 최근 문서들과 랍비의 가르침 등을 모두 인정하는 바리새인이 부활을 믿었던 것과 다르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고 보는 관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자칫하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편이라는 인상을 주게 만들었다. 사두개인들의 의도는 분명하였다. 예수님이 부활을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바리새인 선생들이 가르치는 논리와 자료를 사용하여 부활을 논증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을 바리새인들 중의 하나로 격하시키거나, 바리새파 선생들의 아류로 격하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의도된 질문에 이전에 보지 못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하신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인정하는 모세 오경에 나오는 모세가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을 만난 장면을 인용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26) 이를 영어로 하면 “I am the God of Abraham, and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이고 헬라어로 “ Ἐγὼ ὁ θεὸς Ἀβραὰμ καὶ ὁ θεὸς Ἰσαὰκ καὶ ὁ θεὸς Ἰακώβ”이다. 이는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이다.”라는 자기 선언을 인용하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각각 다른 시기의 인물이지만 하나님이 이들을 지금 살아 있는 자들 처럼 묘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모세의 하나님이 되고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 동시에 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도 현재 살아있는 자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27)

 

우리는 예수님의 답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는 부활 이후의 삶의 모습이다. 누구의 아내이냐는 질문의 답으로 예수님은 사람은 부활하여 “하늘의 천사와 같으리라”고 답하신다. 이는 부활 이후의 삶에서 현실의 가족과 부부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매우 아쉬워할지 모르지만, 더 넓고 본질적인 가족으로 귀환하는 부활 이후의 삶에서 좁고 피상적인 현실의 가족은 그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성관계, 그리고 결혼 또한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부활 이후에 더 이상 죽지 않는 육체를 얻는다면 결혼과 생식은 그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우리는 결혼의 목적인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을 수 있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25) 천사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이기에 생식이 필요 없다면 결혼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생식을 위한 제도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결혼의 일차적이며 가장 중요한 이유가 생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결혼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가르치신다. 일부에서 결혼을 영적인 연합, 관계의 충실성과 기쁨을 더 중요한 이유로 주장하지만, 이는 중요한 것이지만 결정적인 결혼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동성 결혼은 결코 가능할 수가 없다. 더하여 다른 본문에서 예수님은 결혼은 한 여자와의 배타적인 연합의 관계임을 규정한다. 결혼은 생식을 비롯하여 한 배우자와의 배타적인 헌신적인 관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생식은 결혼의 다른 조건들보다 항상 앞선다. 

 

둘째는 영혼과 육체를 포함한 생명의 중요성이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을 거부하신다. 생명은 육체와 영혼이 연합된 것이다. 육체만 살아 있는 것도, 영혼만 사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인간 자체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며, 영혼에만 생명이 있다는 영육 이원론에 빠지게 만든다. 이는 현실 삶을 부정하거나 쾌락에 빠지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나 남기고 있다. 예수님의 생명에 대한 통합적인 사고는 현실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활의 육체의 생명이 지금 우리의 생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는 현실에서 미래의 부활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사는 삶, 죄에서 멀어지는 삶은 부활을 지금 경험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넘어서 미래의 부활할 나의 하나님이 지금 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부활은 하나님이 지금 나를 죽은 자로 대하시지 않고, 아니면 죽을 자로 대하시지 않고 영원히 생명이 있는 자로 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지금도 우리 신자들은 부활을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