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마가복음 12장 13~17절)
이 사건은 처음부터 계획된 함정이었다. “책잡으려”라는 단어 자체가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놓은 올무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무슨 답을 할지 예상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급진적이며 사이다 같은 발언을 보자면 로마에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하면 로마에 반역한 자로 고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분명하지 않은 답을 하셨다. 결국 바리새인들의 의도는 실패하였지만 이것은 더 많은 질문들로 이어졌다. 그러면 예수님은 정말 예매 모한 답을 하신 것일까?
마가복음을 주석한 R. T. 프랑은 마가복음 12:17 ( Τὰ Καίσαρος ἀπόδοτε Καίσαρι καὶ τὰ τοῦ θεοῦ τῷ θεῷ.)에서 “돌려주다.”는 뜻의 ἀπόδοτε의 의미에 주목한다. 프랑은 이를 통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동전인 데나리온에는 원래 가이사의 것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이 제국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돈을 사용한다면 제국에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시민의 의무이며 이는 제국의 것을 돌려 주는 것이지 내 것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드린다는 것도 동일한 의미라 할 수 있다. 다만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때, 황제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권위를 행사할 때를 의미한다고 프랑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시지 않고 “그 하나님의 것들(τὰ τοῦ θεοῦ)”로 소유를 한정하여 표현하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사람은 세속정부나 권위에 귀속되지 않는 특별히 하나님에게만 속해있는 것을 돌려 드려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들은 인간이 반드시 하나님에게만 돌려 드려야 하는 것이다.
돌려준다(ἀπόδοτε)는 것은 앞의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주인과 맺은 계약을 통해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세’와 같은 의미이다. 세도 원래 주인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주인은 자신의 소유를 농부들이 대신 농사짓게 하여 그 결과 중에서 일부를 돌려받는다. 세라는 명목으로 받지만 이는 원래 주인의 것을 돌려받는 것이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이사의 것이란 당시의 문화상으로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은 모두 가이사 황제의 소유이기 때문에 세금이란 가이사가 자신의 것을 돌려받는 수단인 것이다. 동일하게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도 여러 형태로 자신의 것을 돌려받으신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가이사는 ‘세금’, 포도원 주인은 ‘세’라고 표현된 것과 같이 “그 하나님의 것들”이란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셔서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시고 있는 것이다. 가이사가 세금을 통해 황제로 인정받고, 포도원 주인인 세를 통해 주인으로 인정 받았듯이 말이다.
이러한 내용을 볼 때에 권위 논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이사에게 줄 세금을 내면서 그의 권위를 인정하는 너희는 하나님에게 드려야할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드려야 할 것을 드릴 때, 비로소 이들이 하나님을 온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바리새인과 헤롯당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것이란 제사의 제물과 형식화된 율법이었다(33). 이러한 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위선자)라고 비판하신다(15). 예수님은 지혜로운 서기관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33)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도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정부처럼 세금을 원하시지도, 건물주나 회사의 사장들처럼 세를 원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을 통해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들어내고자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을 위기에 빠뜨리려는 바리새인의 감언이설은 인간에게는 거짓이며, 아첨꾼들의 말이지만 예수님에게는 진실이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침이니이다”(14) 하나님은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순종하는 열매를 인간에게서 돌려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로운 서기관의 입으로 다시 말해진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33)
난 하나님을 진정 주인으로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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